추석 당일, 엄마와 어딜갈까 고민하다가 열었길래 가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날씨가 너무 좋았다. 쾌청한 하늘, 너무 덥지 않고 너무 춥지 않은 날씨. 오히려 조금 더웠다.

기대하지 않고 본 전시인데 기대 이상으로 좋았던 전시.

한국 채색화 특별전은 원래 유료 (2000원) 관람 전시인데, 미술주간?이라서 무료로 관람하였다. 유료전시여도 현대미술관은 이번년도 말에 만료되는 내 아끼고 소중한 예술인패스로 무료 관람이 가능하긴 했는데, 어쨌든 엄마까지 무료로 본 전시라서 더 좋았다.

1층에 1전시실, 2전시실의 생의 찬미 전시. 엄마가 prayer가 찬미냐고 물어봤다. 음. prayer는 찬미는 아니긴 한거 같은데, 어쨌든.

<<생의 찬미>>전시는 한국의 채색화가 한국인의 삶에서 담당했떤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되었다. 
한국 채색화의 전통적인 역할은 삶 속에서 나쁜 기운을 몰아내고(벽사), 장수와 부귀영화를 가져오는 좋은 기운을 불러들이고(길상), 학문을 숭상하며 명심해야 할 중요 문구를 마음에 새기도록 하며(책가도와 문자도), 개인과 나라의 역사를 기록으로 남길 뿐 아니라(기록화) 감상화로서 이상적인 산수풍경을 통해 우리의 의식을 고양시키는 것이었다. 감상화를 제외하면 어찌 보면 주술적이기도 한 이러한 기능들로 인해 한국의 채색화는 회화로 인정받지 못하고 오랫동안 민예품과 장식화로 다루어졌다. - 전시부록 중.

호기로운 모습의 용. 9마리의 용이 병풍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작자미상의 작품들이 이 전시에는 특히 많았는데, 그도 그럴것이 위에 도록에 적혀있는 것처럼, 채색화는 당시 진정한 의미의 예술로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인 것 같다.

정말 마음에 들었던 작품. 엄마도 이 그림을 사고 싶다고 이야기 하시기도 하셨다.

불사조. 이건 현대화가의 작품이었다.

용이 멋진 것 같아.

이 작업은 이렇게 새까만 작업이 오로지 종이에 연필로만 이루어졌다는데 감복하여 사진을 찍어올 수 밖에 없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작품이 되게 정감이 갔다.

색감이 너무 고급져서 좋았던 작품. 파란색과 황토빛의 대비가 아름답다. 어머니왈, 화병이 너무 불안해보인다고.

목단과 고양이. 화투에 나오는 그! 난 장미인줄 알았는데 목단이라지 뭡니까.

이 그림도 되게 마음에 들었다.

요부분이 특히. 잔잔한 색감의 채색이 마음에 쏙 들었다.

반대편에서 보면 흰색의 판넬 호랑이인데 (그 쪽은 깜빡하고 못찍음), 쭉 돌아서 보면 이런 오방색으로 이루어진 픽셀화된 호랑이가 나타난다. 

부적 같이 생긴.

한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업. 문자도.

디지털 영상 작업. 여러개의 백자 위에 문자도가 있었는데, 이 청화상감백자가 내 눈엔 제일 예뻐 보였음.

넙치? 가자미 같이 생긴 물고기인것 같은데 다리도 달려있어서 뭔지는 모르겠음.

아이가 그린 그림을 차용했다고 하는 책가도의 현대적 해석.

아이가 그린 것으로 보이는 장수풍뎅이 자개가 가장 눈에 띄었음.

부조로 작업된 책가도. 책 이름 중에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깊이에의 강요'가 있어서 반가웠음.

되게 심오한 내용의 작품이었는데, 작품 설명과 작품을 번갈아 보다보니 좀 어거지 같다는 생각은 들었음.

상징이 중요한 것 같아서 사진 찍어와봄.

민화 배우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그림 느낌 너무 좋음.

밑의 그림의 확대사진인데, 모눈종이인지 일일이 선을 다 그려서 그린건지 아무튼 굉장히 집요한 작업인것 같아서 확대사진을 찍어봄.

성남 신도시의 황량함을 표현했다고 함.

이런 그림도 되게 재밌는 것 같음.

달과 해. 그리고 백록담.

산수화. 필력이 느껴진다.

이건 산수화와 그래피티적인 요소를 결합한 느낌이어서 좀 신기했다. 힙한 느낌의 산수화라고나 할까.

위 그림의 부분 샷.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

다다익선이 왜 작동을 멈췄지? 라고 엄마한테 물어봤는데, '전력 소모가 심해서?'라고 말했다. 근데 9/15/22에 다다익선 복원기념식이 있다고 하더라.

이게 뭔지는 모르겠는데, 전시라고 해서 보기는 봤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사이트에서 데려온 사진.

직접 찍은 원형정원의 사진들.

엄마는 '이게 뭐냐, 별거 없다'고 실망하셨음.

날 한번 맑고 좋다.

구름이 예술.

좀 특이하게 생긴 애라 찍어봄. 빨간색으로 요렇게 된 애들은 본거 같은데, 보랏빛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5, 6 전시실은 7월 31일인가를 마지막으로 전시를 재정비중에 있다고 한 것 같았다. 나는 근대미술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봤고, 현대미술쪽에서는 아는 작가들의 이름들이 보여서 눈이 반짝였다.

박생광. 무당.

수묵화의 필력이 너무 엄청나서 사진을 찍어옴. 앞에 서있는 나무의 표현이 정말 자신감 넘치고 당당한 느낌이다.

이것도 좀 독특해서 찍어봄. 색 대비와 극사실주의.

민중미술. 통일에 대한 표현이 돋보이는 작품. 통일이 되면 좋겠다는 개인적 생각은 있지만, 너무 멀고 불가능한 이야기 같다. 통일을 바라는건 너무 천진한 생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금.

뭔가... 그림 한점에 구속감을 너무 잘 표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사진 찍어왔다.

근현대의 미술소그룹에 대한 전시코너였는데, 그렇게 막 와닿는 파트는 아니었다. 이 나무와 저 뒤에 붙어있는 나무 조각들이 좀 매력적이어서 사진을 찍어왔다.

의미가 뭔지 되게 궁금하다.

선풍기 모터들.. 몇대는 좌우로 움직였다.

제목이 훵키네이션이던가, 뭐 그런 비슷한 제목이던데, 내가 생각해도 상당히 훵키하긴 하다.

와, 양혜규의 작업을 여기서 볼 줄이야. 양혜규 작업을 직접 본것 만으로도 뭔가 소원풀이를 한 느낌이었다.

백남준.

백남준의 작업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오 캡틴 마이 캡틴' 잘은 모르지만 그냥 스승 같은 느낌이 든다. 물론 내가 그의 작업과 비슷한 작업을 한다는 건 아니지만.

박이소의 작업도 있어서... 지난번 박이소전때 못봤던 작업이어서 열심히 기록해왔다.

김수자인가 했던 작가의 작품. 그냥 나는 일반적으로 알록달록하면 좋고, 섬유를 사용한건 그냥 따뜻한 느낌이라서 좋다.

자화상이라는 작업이었던가 그랬음. 오랜만의 셀카라 카톡 프사도 이걸로 바꿨다.

삼라만상이라는 작업. 작가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예전에 어떤 사람이 김범 작업 너무 좋다고 한게 기억나서, 또 열심히 기록해왔다.

양혜규 작업 사진 2.

난 이런게 너무 좋다구. 그냥.

김홍석. 내가 관심있게 지켜보는 현대작가 중 한명. 위트와 유머가 차고 넘치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

무거운 발걸음.

한예종 조형예술과 교수로 알고 있는 안규철. 아직도 교수인가? 그건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죄를 닦는 솔인건가.

이거 좀 신박했음. 두명이 같이 쓸 수 있는 안경? 외계인 안경? 그것도 아니라면?

아마 김홍석 작가의 작업일 것이다. 그냥 이것만으로도 너무 기발하고 재미있다.

정연두. 예전에 예술의 전당 근처 갤러리에서 개인전 하는 것 봤었는데. 3채널 비디오로 일본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혼자서 이 전시를 봤더라면 이 영상을 좀 진득허니 봤었을 것 같다. 궁금하니까.

코카콜라를 문자도로 만들었다고오? 이런 느낌이었음.

권오상도 유명하지 않던가. 아라리오 갤러리 소속 작가 아니던가. 작업은 이해가 잘 안갔지만 일단 기록은 해옴.

갤러리 샵에서 사고 싶었으나 사긴 좀 아까워서 못산걸 사진은 찍어왔다. 내가 미술치료하는 아동중에 공룡 너무 좋아하는 아동이 있어서 같이 하고 싶었지만, 7세 아동이 하기에는 좀 어려워보이기도 했고, 6천원은 결코 싼 가격이 아니어서 포기함.

엄마가 자꾸 만지작 거리면서 사고 싶어해서 온라인으로 살 수 있을까 해서 사진 찍어옴.

미술관 앞의 연못에 사는 잉어들. 먹이를 줄거라고 생각했는지, 아니 우리가 보여? 우리를 계속 쫓아왔다.

엄마도 자기가 본 전시중에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전시라고 해서 너무 다행이었다.

생의 찬미 전시에서는 전통적인 채색화와 현대적으로 재해석된 채색화가 잘 크로스 오버 되어 있어서 너무 좋았다.

한국근현대미술에서는 이름이 익은 작가들의 새로운 작업들을 만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가끔 현대미술관 과천관은 트렌디함에서 살짝 빗나갔고, 소장품전 같은 진부한 전시가 있을때가 꽤 있었는데,

그래도 이번엔 시기 적절하게 좋은 기획전시를 보고 온 것 같다. 날씨도 좋았고, 전시도 정말 좋았음! 전시 끝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혹시라도 가시고 싶으신 분이 있다면 정말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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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어떤 연유로 전시를 자주 가야겠다!라는 의지가 불탔는데, 여러개의 가 볼만하다고 생각한 전시중에 가장 전시 마감이 임박했기에 이 전시를 선택했다.

호안 미로와 칸딘스키가 좀 비슷한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호안 미로에 대해서는 아마 미술시간에 배웠던가? 아무튼 이름이 꽤 익숙하고, 그림도 많이 낯이 익는 작가다. 추상화 작가라는 점이 가장 내 마음에 들었다.

삼성역 근처 대치동의 마이아트뮤지엄에서 기획된 호안 미로전. 마이아트뮤지엄을 가봤었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신논현역 근처에 있는 미술관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없어진건지, 아니면 강남구청역 근처의 M컨템포라리뮤지엄이랑 헷갈렸던 것 같다. 고로, 마이아트뮤지엄은 처음이었음. 마이아트뮤지엄은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19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원래 2만원인데 인터넷예매로 1000원 할인 받음) 봤는데, 생각보다 규모가 작았다. 한 3-4시간 볼 수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1시간만에 뿅하고 끝나버리더란...

석판화라는 점이 끌렸던 작품이다. 석판화를 해본적이 한번도 없는데 모노타입이랑 비슷한걸까 궁금하다.

삼원색과 초록색, 그리고 흰색 여백과 검정색. 호안미로의 시그니처 색깔들이다. 개인적으로 호안미로는 검정색을 정말 잘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석판화. 중간중간에 호안미로에 관한 영상들도 있었는데, 하나씩 다 끝까지 봤다. 짤막짤막하게 소개 영상 처럼 되어 있어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호안미로의 초기 작업을 보면 시와 그림을 연결시키는 작업들이 있었는데, 그것들이 꽤 인상 깊었다. 시의 매체가 언어라면, 그림의 매체란 점, 선, 면인데, 호안 미로는 점, 선, 면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기호를 창조해내는데 성공한 것 같다.

이건 제목이 무려 '시'다.

조각 작품도 꽤 신선하고 좋았다. 아쌍블라주라고 하나 이런걸.

회화작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유머와 위트가 조각 작품에는 녹아있었던 것 같다.

내가 정말 추구하는 작업 스타일이다. 물건 주워가지고 그것 가지고 새롭게 창작 하는 것.

이런거 정말 좋아한다. 이 작품은 왠지 니키 드 생팔의 작업이 떠올랐다.

색이 없는 조각도 좋았는데, 색을 입히니까 또 그 나름대로 매력이 있다.

'세 가닥의 털처럼 눈은 변태를 겪으면서 특징을 잃은 인물의 잔해이다'라는 설명이 왠지 멋있어서 전시설명을 찍어왔다.

재기발랄하다. 전시장이 테마에 따라 배경 색이 달랐는데, 빨간색 벽, 연두색 벽 이런게 오히려 미로의 그림을 두드러지게 해줘서 좋았던 것 같다.

액자가 특이해서 액자도 미로가 한건지 궁금했다.

기존에 잘 그려진 그림을 90도로 회전시키고 그 위에다가 자신의 스타일을 덧씌운 작업. 기존의 질서나 회화적 요소 등을 거스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호안 미로의 작업실. 친구가 설계해줬다고 전시 중간 영상에 나왔나 그랬는데, 저런 작업실 나도 한번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전에 가능할지.

(위 두 작업은 전시에 없던 그림임) 이런 조금 더 심화된? 더 다듬어진? 더 성숙해보이는? 작가 그림인생의 후기스러운? 그림들도 보고 싶었는데, 뭔가 그런 그림들은 없었던거 같다는 느낌이 든다. 스페인 대사관의 후원?으로 이루어진 전시이던데, 30몇점밖에 안된것도 조금 실망스러웠다. 전시 마지막에는 작품들을 싣고 온 빨간색 컨테이너들도 전시를 해놨는데, 그런거 전시할 공간에 다른 작품 하나를 더 전시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잘 봤지만, 19000원에 준하는 가성비 좋은 전시는 아니었다는게 개인적인 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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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예에전에 갔던 마르셀 뒤샹전 후기를 적으려고 모아둔 사진 모음을 찾아서 아까운 김에 포스팅한다.

마르셀 뒤샹전 포스터.

2019년 초에 있었던 전시니까 정말 꽤 오래 되었다. 사진을 못찍게 해서 너무 열받아서 전시 보면서 전시되어 있는 작품 제목을 싸그리 다 적어왔었다.

그래서 그 제목을 토대로 작품 검색해서 후기에 올리려던 속셈이었는데, 문제는 사진을 다 모아놓고, 사용하던 노트북을 동생에게 넘겨줘야하는 일이 있었어서 어쩔 수 없이 묵혀뒀어야 했다. 지금은 동생이 노트북을 다시 나에게 돌려줘서 모아둔 사진들을 찾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에 바로 후기를 적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서 이 포스트는 이 전시에 있었던 작품 나열정도로 끝나야할 것 같다.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작품 하나하나에 대한 코멘트를 달기는 어려울 것 같음.

한국의 마르셀 뒤샹전에 전시된 작품들은 이런게 있었다, 하는 정도로만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390 No. 12

L H O O Q로 유명한 그 작품.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에게 콧수염을 그려준 작품. 다다이즘의 메니페스토.

Anemic Cinema(1926)
Piston(1914)

사진 작업이었던 것으로 기억.

Etant Donnes(1966)

이 작품은 기억이 좀 난다. 전시의 가장 마지막에 있던 작품으로 문틈으로 난 구멍으로 바라다 보면 이런 장면이 연출되어져 있던. 관람객들의 관음증적인 면모를 건드렸다고 해야하나. 전시에서는 굉장한 대작으로 묘사가 되어있었던 것 같은데, 구멍을 통해서 나체의 여성을 봐야한다는게 썩 즐거운 것 아니었을 것 같다는 생각.

Etant Donnes(1966)

이게 위의 작품의 앞에 놓여져있는 문이다. 문에 나있는 두개의 구멍으로 쳐다보면 위의 나체의 여자를 볼 수 있게 되어 있는.

Fania(Profile)(1915)

단어와 낙서로 장난치듯 만들어낸 작품 같다는 생각.

First Papers of Surrealism
Fountain (1950)

이게 그 유명한 뒤샹의 작품. 이 작품의 명확한 의미는 아마도 뒤샹만이 알고 있겠지만, 이 작품의 출품이 미술계에 정말 엄청나게 센세이션한 파문을 일으켰었다는건 익히 들어 알고 있다.

L.H.O.O.Q

위의 다다이즘 메니페스토에 쓰인 그림. 이 그림에 대해서도 많이 들었는데 내용은 다 까먹은듯. LHOOQ라는 말이 되게 바보같은? 말이라고 들었던거 같다. 리서치가 좀 필요함.

Pocket Chess Set

뒤샹이 체스대회에 나갔었다고 본거 같기도 한데,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뒤샹이 체스에 관심이 있었다 정도였던건지. 아무튼 이게 뒤샹이 제작한 체스판과 말이라고 했던 것 같다.

Rendez Vous of Sunday, Feb 6, 1916

랑데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었던거 같은데 뭘 적었던 건지 정확히 기억은 안난다. 불어로 뭔가가 잔뜩 적혀있다.

Rotoreliefs

이거 꽤 재밌었던거 같은데, 얘네들이 막 돌아가는 영상이 함께 있었던 것 같다.

Rrose Selavy

뒤샹의 부캐격인 로즈 셀라비. 자신의 여성성에 대한 탐구였다고 본다. 이런걸 드랙퀸이라고 하던가. 손동작이 참 우아하구만.

The
With Hidden Noise(1916)

제목으로 미루어 짐작컨데, 이게 저 안에 뭐가 들어 있어서 소리를 낸다고 했던가, 뭐 그랬던 거 같다.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

조르주 브라크 그림 같기도 하고, 피카소 그림 같기도 하다. 계단을 내려오는 동작에 대한 연속성을 표현한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그녀의 독신남들에 의해 발가벗겨진 신부, 조차도(1926)

이게 꽤 재밌는 작업이었는데, 정확한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훨씬 컸다. 실제 작업이 전시장에 있었나? 무튼 그랬음.

병걸이

이런 독특한 조각품들도 굉장히 위트가 있게 다가왔었다. 제목은 병걸이인데, 실제 병을 걸기엔 좀 조악해 보인다.

여행가방

뒤샹이 만든 여행가방이었던가..

자전거 바퀴(1964)

이런걸 아상블라주라고 하는 걸까? 정말 쌩뚱맞은 두가지를 태연자약하게 또,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것. 최근에 본 호안 미로의 조각들도 생각이 난다.

킹과 퀸을 가로지르는 날랜 누드들(1912)

계단을 내려오는 누드 No. 2와 같은 선상에 있는 작업인 것 같다. 뒤샹이 어떻게 이런 작업을 하다가 개념미술로 넘어갔는지 궁금하다.

뒤샹전은 꽤 의미심장했었고, 나중에 또 한다면 꼭 또 가서 볼 의향이 있는 작가다.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친 피규어이므로.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의지 빠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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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적으로 주요 미술관에서 하는 내가 관심있는 전시들을 정리해서 표로 정리하곤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박이소전이었다. 계획하지 않았었는데 어쩌다가 가서 보게 되었다. 

박이소라는 이름은 나에게 꽤 특별하다. 박이소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것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책의 역자로 적혀있는 것을 본 때였을 것이다. 다니던 미술학원 원장이 한예종 출신이어서 박이소의 제자였을 수도 있고 그 원장이 책을 권해줬던가 해서 그 책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미국에 있을때 LACMA의 College Night이었던가에서 콜라쥬작업을 하다가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그의 작업을 잡지에서 발견하고 오려 붙였을때 한번 더 맞닥뜨렸다. 귀국후 현대미술관을 몇번 들락날락해보니 박이소라는 작가는 꽤나 대우받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작가에 관심이 정말 많았는데 박이소전을 한다고 하니 반갑지 아니할 수 없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저녁을 잘 먹고 3일간 단식투쟁을 하면서 플라스틱으로 된 밥솥을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닌 퍼포먼스였다고 한다. 도슨트 설명에 의하면 박이소는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했고, 그런 것을 표현하는 한 방편으로 이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듣기 전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추수감사절 저녁이 내포한 의미에 대한 저항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밈에 공감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그림그릴때 마다 이 그림이 다른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ㅡ라는 말이 '아!'하고 작은 탄식을 뱉게 했다. 


박이소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인들이 보면 이것이 조선시대 문인화인 사군자중 난을 친것을 엉성하게 흉내낸 작업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반면,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러한 작업이 '동양적'이라는 이유로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데 그 아이러니가 있다. 동양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시선을 냉소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비웃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자본이 창의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그조틱, 마이노리티, 오리엔탈이라는 작업이다. 이 또한 서양인들의 시선에 비추어지는 이국적인, 소수자의, 동양적임에 대해 마음껏 비웃는다. 박이소는 비꼼의 미학을 정확히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간장, 커피, 콜라로 그린 그림들이다.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라고 한다.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별은 성조기를 연상시켜서 나는 별로 마음에 안든다.


시험관과 시험관 거치대를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서 거대한 시험관 안에 야구 방망이를 넣고 간장을 채워넣었다. 간장은 동양적인 것을 상징할 것이고, 마늘쫑 같은 것 대신에 들어가 있는 야구방망이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꽤 재밌는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저 간장에 절여진 야구 방망이를 썰어서 먹어 볼 수는 있을까 같은.


한평이라는 작업이다. 아이코, 한평이 이렇게 작았구나야.


이 작업도 꽤 재밌었다. A4를 위한 소조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아마도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Letter 사이즈라는 요상한 사이즈의 종이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겠지 짐작해본다.


이 책이 그 책이다.


개념미술의 진수를 박이소가 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된다. 이 전시에는 설명이 없이 전시되었다면 매우 불친절했을 그의 작품들의 뒷배경을 낱낱이 전시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노트도 한장 한장 스캔되어 전자식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함께간 어머니가 빨리 가자고 재촉 하셔서 전부 훑어보지 못한것이 조금 많이 아쉽다. 본 것중에 재밌거나 심오하거나 신선한 것들은 사진으로 담아왔다.


한국의 노동 시간 문제에 대한 작업을 '바캉스'라는 작업으로 개념화 했다. 도슨트의 설명 없이는 어떤 작업인지 잘 몰랐는데, 밑의 호텔박스(?)에 위 리스트의 6점의 미술작품을 넣어서 운반하여 스페인의 길거리에 해가 뜨면 전시를 하고 해가 지면 전시를 걷는 형식으로, 날이 궂으면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시를 진행했다고 한다.


바캉스라는 작품에 쓰인 운반 박스.


이 작품은 사진을 찍어 오지 않고 설명만 찍어 왔는데, 각목으로 정사각형에 다리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가놓은 작품이었다. 비스듬히 붙어있는 각목에 베니스 비엔날레의 각 나라별 관들이 같은 사이즈로 조각되어 있다는게 이 작품의 맹점이라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박이소가 해왔던 작품들에 비해 너무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인데, 그게 좀 약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슨트가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이소는 주류일까요, 비주류일까요?' 미국에서는 비주류였지만 한국에선 어쨌든 주류였다. 그 부분을 도슨트도 확인하면서 비주류를 자청하는 박이소에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 했고,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주류를 공격하는 비주류적 태도를 놓지 않았다며 그를 옹호했다.


왜 이 작품을 설명과 작품까지 두장이나 찍어왔는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나는 이 작품에 감흥이 별로 없다. 2003년에 2010년에 있을 일을 작업으로 만들면서 그가 2010년도 되기 전에 죽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생사 덧없다.


world wide web을 풍자한 작업이라고 한다. 듣도 보도 못한 도시의 이름들이 저렇게도 많다니 정말 인터넷은 세계 곳곳을 연결 시켜주고 있기는 한걸까?


블랙홀 의자. 개념은 정확히 이해를 못했는데 재밌는 발상인 것 같아서 사진으로 담아왔다.


Minor Injury 번역하면 사소한 상해 정도 되려나. 미국에 유학간지 3년만에 이런 비영리 전시공간을 만들어 활동했다는데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왜 나는 그러지 못했나.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작품. 내가 아마 이 제목을 보고 내 회화 작업 중 하나에 '나의 밝은 미래'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예전에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박이소 작품 중에 비슷한 작업을 보았을때 감탄했던 생각이 났다. 그 작품의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그때는 저렇게 전등들이 있고 그 앞에 나무 판이 있었고 그 나무판에는 원형으로 가늘게 틈이 있어서 빛이 그 틈사이로 비춰졌던 것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당신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책상같은 제목이었는데 박이소는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전시장도 칠하지 않은 나무 합판으로 대부분 짜여 있어서 날것의 느낌이 많이 나서 좋았다.


왜 저기에 저런 창문이 있는지 설명도 없었고 도슨트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는 각잡고 사진만 찍어왔다. 혹시 저게 박이소가 살던 집 창문이려나... 나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죽은 작가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게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 노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 같은 것도 번역되고 프린트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남보여주기 부끄러운 사적인 내용은 일절 없다고 하더라도 유족들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것들을 전시하는데 전부 동의를 했을까 싶었다. 결국 돈일까. 그런걸까.


내가 그 LACMA College Night에서 콜라쥬 할때 본 그거였다. 박이소가 이 작업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는 완성된 작업인줄 알았는데. '우리는 행복해요'. 북한의 선전간판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입간판을 세우는 것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우리'와 '행복'이 내포한 의미를 곱씹어 보면 참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미술관 입구에 떡하니 있었는데 들어갈땐 못보고 지나쳤다. 도슨트가 이야기해줘서 겨우 본 작품.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뜰 수 없는 배를 만들었는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미국에 대한 동경을 담은 것이 아닐까.. 도슨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난다. 원본은 없어졌고, 박이소의 제자 두명이 새로 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스승의 시신을 염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 박이소가 죽었을때 한국 미술계 전체는 비통했고, 아트선재센터장은 한국 미술이 박이소 없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박이소는 그렇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것에는 실패한 한국의 주류 작가. 미국의 영주권까지 땄는데 왜 미국에서 자리 잡지 않았을까. SADI 교수 자리가 그렇게 대단히 좋은 거였을까. 미국에 남았다면 죽기까지 비주류를 벗어나기 힘들었을테지만 한국에 들어와 주류가 되었으니 성공한 삶이었던 것 같다.

옥타비아누스와의 37분짜리 인터뷰를 보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흥미를 잃어서 인터뷰 보기를 2분만에 그만두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대놓고 박이소에게 물어본다. 당신에게 성공은 무엇이냐고. 작품들을 만들고 죽어서 후세 사람들이 그 작품들을 돌봐주는 것이 성공이냐고. 박이소가 답하길 성공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충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뒤에까지 더 보지 않아서 그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만족을 원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모호한 대답이 꽤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인터뷰어가 하는 말에 '그렇다 나는 내 작품들이 후세 사람들로부터 돌보아지면 만족할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실망이 덜했을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이번 전시는 정말 그 말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대기가 높은 벽면에 적혀있고 그의 아이디어 스케치며 드로잉들이 낱낱이 연구되어 지고 전시되어 지는, 후세의 추앙. 차라리 그런 것을 원했다고 해주세요.

함께 전시를 본 어머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야, 너도 이런 전시는 하겠다.' 그래서 나는 '엄마,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야. 그리고 죽었어'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또 이야기했다. '그럼 너도 죽어서 이렇게 할래?' 

전시를 2시간 보고 나왔더니, 엄마가 '너도 저런 미술 할려고 그래?'라는 말에 나는 침묵했다. 

'이건 개념미술이야 자기가 생각한 것을 표현한 거라고.' 

'야, 생각한 것을 뭐하러 보냐 글 읽으면 되지'

설명없이 이해하기 힘든 미술. 텍스트나 부연설명이 꼭 따라붙어야 하는 개념미술. 나는 이런게 좋다. 언뜻보면 개념미술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 같지만, 어떤 형체가 존재함으로써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박이소를 위에서 좀 깠지만 나는 앞으로도 박이소의 전시가 있다고 하면 또 가서 볼 것이다. 분명히 노력하는 작가였고, 신박한 생각을 해내는 멋진 사람이었다. 실상 작가로서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후세의 추앙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이 싫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욕망이 있었고 감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까지 평가절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것 같다. 


Posted by mont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