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적으로 주요 미술관에서 하는 내가 관심있는 전시들을 정리해서 표로 정리하곤 하는데 그중에 하나가 과천 현대미술관에서 하는 박이소전이었다. 계획하지 않았었는데 어쩌다가 가서 보게 되었다. 

박이소라는 이름은 나에게 꽤 특별하다. 박이소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것은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라는 책의 역자로 적혀있는 것을 본 때였을 것이다. 다니던 미술학원 원장이 한예종 출신이어서 박이소의 제자였을 수도 있고 그 원장이 책을 권해줬던가 해서 그 책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그 이후에는 미국에 있을때 LACMA의 College Night이었던가에서 콜라쥬작업을 하다가 '우리는 행복해요'라는 그의 작업을 잡지에서 발견하고 오려 붙였을때 한번 더 맞닥뜨렸다. 귀국후 현대미술관을 몇번 들락날락해보니 박이소라는 작가는 꽤나 대우받고 있다는 것을 자연스레 느낄 수 있었다. 이러저러한 이유로 이 작가에 관심이 정말 많았는데 박이소전을 한다고 하니 반갑지 아니할 수 없었다.


미국의 추수감사절 저녁을 잘 먹고 3일간 단식투쟁을 하면서 플라스틱으로 된 밥솥을 줄에 매달아 끌고 다닌 퍼포먼스였다고 한다. 도슨트 설명에 의하면 박이소는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며 돈을 많이 쓰는 것에 대한 죄책감이 심했고, 그런 것을 표현하는 한 방편으로 이 퍼포먼스를 했다고 한다. 그 설명을 듣기 전에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해본 내가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추수감사절 저녁이 내포한 의미에 대한 저항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밈에 공감하는 내 입장으로서는 적어도 그렇게 느껴졌다.


'나는 그림그릴때 마다 이 그림이 다른 사람들 맘에 들었으면 하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요즘 세상에 가만히 벽에 붙은 그림이 뭘 할 수 있을까 하며 자꾸 한심해 한다.' ㅡ라는 말이 '아!'하고 작은 탄식을 뱉게 했다. 


박이소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고찰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한국인들이 보면 이것이 조선시대 문인화인 사군자중 난을 친것을 엉성하게 흉내낸 작업이라는 것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반면, 서양인들의 눈에는 이러한 작업이 '동양적'이라는 이유로 찬사를 받을 수 있다는데 그 아이러니가 있다. 동양화에 대한 서양인들의 시선을 냉소적이면서도 해학적으로 비웃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에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냈다.




자본이 창의력이라는 말에 공감한다.


이그조틱, 마이노리티, 오리엔탈이라는 작업이다. 이 또한 서양인들의 시선에 비추어지는 이국적인, 소수자의, 동양적임에 대해 마음껏 비웃는다. 박이소는 비꼼의 미학을 정확히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간장, 커피, 콜라로 그린 그림들이다. 문화의 동질성과 이질성에 대해 상징적으로 표현한 작업이라고 한다. 작가가 특별히 애정을 가졌던 작품이라고 하는데 별은 성조기를 연상시켜서 나는 별로 마음에 안든다.


시험관과 시험관 거치대를 거대한 크기로 만들어서 거대한 시험관 안에 야구 방망이를 넣고 간장을 채워넣었다. 간장은 동양적인 것을 상징할 것이고, 마늘쫑 같은 것 대신에 들어가 있는 야구방망이는 무엇을 상징하는지 정확히는 모르지만 꽤 재밌는 상상을 가능하게 해준다. 저 간장에 절여진 야구 방망이를 썰어서 먹어 볼 수는 있을까 같은.


한평이라는 작업이다. 아이코, 한평이 이렇게 작았구나야.


이 작업도 꽤 재밌었다. A4를 위한 소조라는 제목의 작품인데 아마도 미국에서 유학을 하면서 Letter 사이즈라는 요상한 사이즈의 종이가 통용되는 것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해볼 수 있었겠지 짐작해본다.


이 책이 그 책이다.


개념미술의 진수를 박이소가 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된다. 이 전시에는 설명이 없이 전시되었다면 매우 불친절했을 그의 작품들의 뒷배경을 낱낱이 전시하고 있었다. 그의 작업노트도 한장 한장 스캔되어 전자식으로 전시가 되어 있었는데, 함께간 어머니가 빨리 가자고 재촉 하셔서 전부 훑어보지 못한것이 조금 많이 아쉽다. 본 것중에 재밌거나 심오하거나 신선한 것들은 사진으로 담아왔다.


한국의 노동 시간 문제에 대한 작업을 '바캉스'라는 작업으로 개념화 했다. 도슨트의 설명 없이는 어떤 작업인지 잘 몰랐는데, 밑의 호텔박스(?)에 위 리스트의 6점의 미술작품을 넣어서 운반하여 스페인의 길거리에 해가 뜨면 전시를 하고 해가 지면 전시를 걷는 형식으로, 날이 궂으면 전시를 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여 전시를 진행했다고 한다.


바캉스라는 작품에 쓰인 운반 박스.


이 작품은 사진을 찍어 오지 않고 설명만 찍어 왔는데, 각목으로 정사각형에 다리가 있는 형태로 만들어 물이 담긴 대야에 담가놓은 작품이었다. 비스듬히 붙어있는 각목에 베니스 비엔날레의 각 나라별 관들이 같은 사이즈로 조각되어 있다는게 이 작품의 맹점이라고 하는데, 나는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박이소가 해왔던 작품들에 비해 너무 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면승부를 하지 않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셈인데, 그게 좀 약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슨트가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청중들에게 질문을 던졌다. '박이소는 주류일까요, 비주류일까요?' 미국에서는 비주류였지만 한국에선 어쨌든 주류였다. 그 부분을 도슨트도 확인하면서 비주류를 자청하는 박이소에게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대표로 전시를 한다는 것은 매우 아이러니 했고,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주류를 공격하는 비주류적 태도를 놓지 않았다며 그를 옹호했다.


왜 이 작품을 설명과 작품까지 두장이나 찍어왔는지 잘 모르겠을 정도로 나는 이 작품에 감흥이 별로 없다. 2003년에 2010년에 있을 일을 작업으로 만들면서 그가 2010년도 되기 전에 죽으리라고 생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인생사 덧없다.


world wide web을 풍자한 작업이라고 한다. 듣도 보도 못한 도시의 이름들이 저렇게도 많다니 정말 인터넷은 세계 곳곳을 연결 시켜주고 있기는 한걸까?


블랙홀 의자. 개념은 정확히 이해를 못했는데 재밌는 발상인 것 같아서 사진으로 담아왔다.


Minor Injury 번역하면 사소한 상해 정도 되려나. 미국에 유학간지 3년만에 이런 비영리 전시공간을 만들어 활동했다는데 정말 멋있는 것 같다. 왜 나는 그러지 못했나.


당신의 밝은 미래라는 작품. 내가 아마 이 제목을 보고 내 회화 작업 중 하나에 '나의 밝은 미래'라고 이름 지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고. 예전에 현대미술관 소장품전에서 박이소 작품 중에 비슷한 작업을 보았을때 감탄했던 생각이 났다. 그 작품의 제목은 생각이 안나는데 그때는 저렇게 전등들이 있고 그 앞에 나무 판이 있었고 그 나무판에는 원형으로 가늘게 틈이 있어서 빛이 그 틈사이로 비춰졌던 것이 참 기가 막히다고 생각했다.


이것도 당신의 밝은 미래를 준비하는 책상같은 제목이었는데 박이소는 나무를 사용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던 것 같다. 전시장도 칠하지 않은 나무 합판으로 대부분 짜여 있어서 날것의 느낌이 많이 나서 좋았다.


왜 저기에 저런 창문이 있는지 설명도 없었고 도슨트도 설명해주지 않아서 나는 각잡고 사진만 찍어왔다. 혹시 저게 박이소가 살던 집 창문이려나... 나는 이번 전시를 보면서 죽은 작가는 보여주고 싶지 않은게 있어도 말을 할 수 없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업 노트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 주고 받은 이메일 같은 것도 번역되고 프린트되어 전시되어 있었는데 남보여주기 부끄러운 사적인 내용은 일절 없다고 하더라도 유족들이 무슨 생각으로 저런것들을 전시하는데 전부 동의를 했을까 싶었다. 결국 돈일까. 그런걸까.


내가 그 LACMA College Night에서 콜라쥬 할때 본 그거였다. 박이소가 이 작업을 하던 중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나는 완성된 작업인줄 알았는데. '우리는 행복해요'. 북한의 선전간판에 적혀있는 것을 보고 우리도 다를게 없다는 생각에서 이런 입간판을 세우는 것을 구상했다고 하는데... '우리'와 '행복'이 내포한 의미를 곱씹어 보면 참 씁쓸하기 그지 없었다.



미술관 입구에 떡하니 있었는데 들어갈땐 못보고 지나쳤다. 도슨트가 이야기해줘서 겨우 본 작품. 콘크리트로 만들어서 뜰 수 없는 배를 만들었는데,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미국에 대한 동경을 담은 것이 아닐까.. 도슨트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줬는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난다. 원본은 없어졌고, 박이소의 제자 두명이 새로 제작한 작업이라고 한다. 스승의 시신을 염하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다고. 박이소가 죽었을때 한국 미술계 전체는 비통했고, 아트선재센터장은 한국 미술이 박이소 없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을까라고 했다고 한다.

내가 생각하는 박이소는 그렇다. 세계적인 작가가 되는 것에는 실패한 한국의 주류 작가. 미국의 영주권까지 땄는데 왜 미국에서 자리 잡지 않았을까. SADI 교수 자리가 그렇게 대단히 좋은 거였을까. 미국에 남았다면 죽기까지 비주류를 벗어나기 힘들었을테지만 한국에 들어와 주류가 되었으니 성공한 삶이었던 것 같다.

옥타비아누스와의 37분짜리 인터뷰를 보다 시간이 없기도 하고 흥미를 잃어서 인터뷰 보기를 2분만에 그만두었다. 인터뷰를 하는 사람은 대놓고 박이소에게 물어본다. 당신에게 성공은 무엇이냐고. 작품들을 만들고 죽어서 후세 사람들이 그 작품들을 돌봐주는 것이 성공이냐고. 박이소가 답하길 성공은 자신이 만족할만한 충분한 작품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뒤에까지 더 보지 않아서 그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만족을 원하는지 나는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런 모호한 대답이 꽤 실망스러웠다. 차라리 인터뷰어가 하는 말에 '그렇다 나는 내 작품들이 후세 사람들로부터 돌보아지면 만족할 것 같다'라고 이야기해주었다면 실망이 덜했을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이번 전시는 정말 그 말에 정확히 부합하기 때문이다. 그의 연대기가 높은 벽면에 적혀있고 그의 아이디어 스케치며 드로잉들이 낱낱이 연구되어 지고 전시되어 지는, 후세의 추앙. 차라리 그런 것을 원했다고 해주세요.

함께 전시를 본 어머니는 전시장에 들어서자마자 이렇게 이야기 했다. '야, 너도 이런 전시는 하겠다.' 그래서 나는 '엄마, 이 사람 유명한 사람이야. 그리고 죽었어' 그러자 엄마는 이렇게 또 이야기했다. '그럼 너도 죽어서 이렇게 할래?' 

전시를 2시간 보고 나왔더니, 엄마가 '너도 저런 미술 할려고 그래?'라는 말에 나는 침묵했다. 

'이건 개념미술이야 자기가 생각한 것을 표현한 거라고.' 

'야, 생각한 것을 뭐하러 보냐 글 읽으면 되지'

설명없이 이해하기 힘든 미술. 텍스트나 부연설명이 꼭 따라붙어야 하는 개념미술. 나는 이런게 좋다. 언뜻보면 개념미술은 머리로만 이해하는 것 같지만, 어떤 형체가 존재함으로써 마음으로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내가 박이소를 위에서 좀 깠지만 나는 앞으로도 박이소의 전시가 있다고 하면 또 가서 볼 것이다. 분명히 노력하는 작가였고, 신박한 생각을 해내는 멋진 사람이었다. 실상 작가로서 작업을 하는 입장에서 후세의 추앙까지는 아니더라도 관심이 싫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 욕망이 있었고 감췄다고 해서 그 사람의 능력까지 평가절하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인것 같다. 


Posted by mon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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